from 철학도가 읽은 세계


[이미지 출처]

Am I a machine? Am I a human?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中

I 인간의 마음

인간의 마음mind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이 별개의 독립적인 실체라고 생각했다. 연장성extension을 가진1 몸과 사유하는 마음은 인간을 구성하며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물리적 공간 속에 존재하는 몸과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마음이 대체 무슨 수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물론 데카르트가 입을 다물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송과선pineal gland"이라는 신체 기관이 있는데 바로 여기서 몸과 마음이 상호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영혼soul이 송과선을 직접적으로 움직임으로써 동물정령animal spirits2을 활성화시켜서 신체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뭐라 할 말이 없다 당연히 털렸다. 심지어 보헤미아Bohemia의 엘리자베스 공주Princess Elisabeth까지 나서서 데카르트를 비판했다. "몸은 접촉에 의해서만 움직여질 수 있는데 어떻게 연장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 마음이 연장성을 가진 물질[몸]과 접촉해서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가?" 데카르트가 궁색한 변명을 내놓자 엘리자베스는 다시 한 번 그를 발라버린다. "물질적인 몸과 비물질적인 마음이 상호작용을 한다고 주장하느니 차라리 마음이 연장성을 가진 물질이라고 말하는 게 낫겠다." 그 뒤로도 데카르트의 심신실체이원론mind-body substance dualism은 여러번 두드려 맞았다.

훗날 의학이 발달하자 마음은 결국 뇌라는 심신동일론mind-body identity theory이 등장한다. 아마도 심신실체이원론과 더불어 대중들이 가장 널리 받아들이는 이론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이론도 힐러리 퍼트남Hilary Putnam이 제시한 이른바 "다수 실현 논변multiple realization argument"에게 치명타를 입고 찌그러졌다. 퍼트남의 비판은 대강 이렇다. 인간이나 지렁이나 문어나 참새나 모두 고통을 느낄 줄 안다. 그런데 고통을 느낄 때 이들의 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모두 다르다. 신체 구조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한마디로 똑같은 심적 상태mental states가 여러 다른 신체적 상태bodily states에 의해 실현된다는 것이다. 심적 상태와 신체적 상태의 동일성은 이제 부정된다.


II 컴퓨터의 마음

다수 실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론이 등장한다. 바로 기능주의functionalism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간은 컴퓨터 에 빗댈 수 있다. 몸과 마음은 각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 컴퓨터가 작동하는 데에 내부의 금속이 금인지 은인지 구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만 하면 된다. 숫자를 두드리니 계산을 완벽하게 해내는가? 클릭을 하니까 창이 열리는가? 키보드를 치니까 글씨가 써지는가? 그럼 문제 없다. 하드웨어가 있어야만 소프트웨어가 작동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소프트웨어의 작동 방식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몸이 없으면 마음의 작용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몸뚱이가 인간의 것이든 원숭이의 것이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다. 때리면 몸을 움츠리는가? 먹이를 먹을 때 표정이 밝아지는가? 그런 식으로 반응한다면 인간이나 원숭이나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적 상태는 신체적 상태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입력input이 주어졌을 때 출력output을 내놓는 방식에 의해 실현된다. 그러니까 인간과 원숭이의 신체 구조가 아무리 달라도 같은 입력에 대해 같은 출력을 내놓는다면 같은 심적 상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기능주의자들이 보기에 심신동일론자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일시했고, 심신실체이원론자들은 소프트웨어를 실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심리철학의 기능주의가 꽃피운 토양을 마련한 것이 바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다. 튜링은 기계도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을 떠올린 것이다. "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a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이라는 논문3에서 그는 오늘날 컴퓨터의 조상 격인 튜링 기계Turing Machine4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튜링 기계는 여러 칸들로 이루어진 테이프tape와 그 칸들을 가리키는 헤드head로 이루어져 있다. 테이프의 칸들에는 유한 개의 기호가 들어갈 수 있고 헤드는 유한한 수의 상태(, … )에 있을 수 있다. 사용자가 테이프의 칸에 기호를 입력하면 헤드는 미리 주어진 기계표machine table에 따라 연산을 수행하고 적절한 결과값을 출력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 기계표에 따르자면 헤드가 이라는 상태에 있을 때 '+'이라는 입력이 주어지는 경우 '1 R '에 대응하는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그림처럼 '1 1 1 + 1 1'이라는 기호를 입력했을 때 튜링 기계는 어떤 식으로 연산을 수행할까? 그 과정은 아래와 같다.

최종 결과물은 '1 1 1 1 1'이다. 2+3=5라는 계산을 수행한 것이다.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이렇다. [튜링 기계 작동 동영상예전에 구글에서 앨런 튜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튜링 기계의 원리를 활용한 간단한 퍼즐을 만들었는데 이것도 한 번 해 볼 만하다. [튜링 기계 퍼즐]

테이프의 칸에 들어가는 기호가 더 다양해지고, 기계표가 훨씬 더 복잡해지면 훨씬 더 어려운 연산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능주의는 인간을 고도로 발달한 튜링 기계라고 보는 것이다. 이상하다고? 갤럭시나 아이폰이 우리한테 말대답하는 것도 다 이런 원리에 의해서 가능한 거다. 걔네들이 더욱 발전하면 인간과 구분하는 게 불가능해질지도? 이미 그들은 상당한 수준의 인공지능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III 이미테이션 게임

튜링 역시 튜링 기계의 잠재성을 높이 평가했다. 튜링 기계가 고도로 발달하면 인간을 흉내imitation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튜링 테스트Turing Test"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다.5 벽 너머에 튜링 기계와 사람이 있다. 여러분이 질문을 던진다. "2+3은?" 튜링 기계와 사람이 모두 답변을 한다. 어느 쪽이 튜링 기계이고 어느 쪽이 인간인지 구별할 수 있겠는가? 구별할 수 없는 경우에 튜링 기계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말한다. 이미 기계가 상당한 수준의 사유 능력을 갖추었음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가? 고도의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튜링 기계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매우 유사하지 않겠는가? 몸뚱이가 쇠붙이라는 것 빼고는 말이다. 

생각할 수 있는 기계, 튜링은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다. 어떤가?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에 빗대어 이해하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게 들리는가?6 어느 날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카톡을 보낸다면? 그게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나는 기계입니까? 나는 인간인가요?"  이미테이션 게임, 그것은 현재 진행중이다.


  1. 공간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2. "신경 내부에 있는 유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본문으로]
  3. 『Proceedings of the London Mathematical Society』2(42) (1936-1937): 230-265 [본문으로]
  4. 음역해서 '튜링 머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문으로]
  5. A. M. Turing,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Mind』 59(236) (1950): 433-460 [본문으로]
  6. 당연한 말이지만 기능주의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일례로 존 설John Searle은 이른바 '중국어 방 논변Chinese Room Argument'을 통해 컴퓨터와 인간의 사고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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