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컨설팅사 '아이디오' 공동 파트너 톰 켈리

창의적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나
여행객같이 주변을 새롭게 보고 샤워·장거리 운전할 때처럼
마음을 적당히 풀어 놓으면 번뜩이는 통찰 얻을 수도 있어
신문·잡지 많이 읽으면 좋아

데이비드 켈리(오른쪽)와 동생 톰 켈리.
 데이비드 켈리(오른쪽)와 동생 톰 켈리.
어느 날 형이 후두암 선고를 받았다. 의사는 생존율이 40%라고 했다. 동생은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강연 도중 연락을 받았다. 곧장 형 곁으로 날아갔다. 2007년 4월의 일이었다.

고통스러운 투병이 시작됐다. 화학요법에 이은 방사선 치료, 모르핀 투여. 결국 수술 끝에 회복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둘은 다짐했다. 낫게 되면 잊지 못할 추억 두 가지를 꼭 만들자고. 하나는 형제만의 여행. 다른 하나는 세상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

기적처럼 후두암이 꼬리를 감췄고, 형제는 일본으로 1주일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책을 한 권 펴냈다. 제목은 '유쾌한 크리에이티브(Creative Confidence). 형제는 데이비드 켈리(63)와 톰 켈리(58)다. 데이비드는 디자인 컨설팅 기업 아이디오(IDEO)와 스탠퍼드대 디자인스쿨인 d스쿨(d.school)의 창업자이고, 톰은 아이디오 공동 파트너이자 베스트셀러 저자다.

스탠퍼드대 인근 아이디오 본사에서 톰 켈리를 만났다.

1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말은 누구나 한다. 당신의 메시지는 무엇이 다른가

"창의성은 누구나 타고난다. 유치원을 가 보면 안다. 어릴 때는 모두가 창의적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데이비드는 d스쿨에서 스탠퍼드 대학원생들에게 디자인적 사고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이미 창의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실습과 격려만으로 그들의 상상력과 호기심, 용기가 얼마나 빨리 되살아나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마치 자기도 모르게 주차 브레이크를 걸고 달리다가 어느 순간 그걸 깨닫고 주차 브레이크를 풀어 자유롭게 달리는 것과 같다."

2 '창의적 자신감'을 끌어내기 위해 '유도된 숙련(guided mastery)'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게 무엇인가

"스탠퍼드대 앨버트 밴듀라 심리학과 교수가 공포증 치료 과정에서 개발한 개념이다. 가령 뱀에 대한 공포증을 치료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한데 단계적으로 조금씩 치유된다. 처음부터 옆방에 뱀이 있는데 가자고 하면 질색한다. 그래서 단계별로 접근한다. 처음에 유리창 너머로 뱀을 잡고 있는 남성을 보게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알면 안도한다. 다음엔 뱀이 있는 방의 열린 문 앞에 서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여러 단계를 지나면 결국 뱀 바로 옆에 설 수 있게 되고, 마지막엔 뱀을 만질 수 있게 된다. 놀랍게도 이렇게 치료된 환자들은 부수적 변화도 얻는다. 대중 앞에서 두려움 없이 얘기하게 되거나, 직장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됐다고들 한다. 살아가는 내내 안고 가야 할 것 같았던 한 가지 공포증을 극복한 경험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 체계까지 바꾼 것이다. 밴듀라는 이 믿음을 '자기 효능감'이라고 불렀다."

'유쾌한 크리에이티브' 저자 톰 켈리는
 '유쾌한 크리에이티브' 저자 톰 켈리는 "번뜩이는 통찰을 얻는 순간은 적당히 마을이 풀려 있어 생각이 자유롭게 표류하는 시간"이라며 "스마트폰을 끄고 명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병근 기자
3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나

"많이 읽는다. 매일 아침 두 가지 신문 외에 잡지 22종을 구독한다. 고객, 동료와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얻는다. 혼자 식사를 할 때도 테드(TED) 같은 동영상을 본다. 지금까지 본 테드 비디오가 800건 정도 된다. 어제도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헤엄쳐서 온 64세 여성 다이애나 나이어드편을 봤다.

창의력의 불꽃이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배양해야 하는 무엇이다. 평소 여행객처럼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봐라. 불꽃이 마법처럼 켜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경험에 자신을 노출시켜라.

문제는 그러다 보면 큰 문제에 대한 깊은 생각을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내면에서 피어오르도록 할 시간 말이다. 나는 하루 시작 첫 5분간 명상에 잠긴다. 스마트폰도 끄고 맘속의 명상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이완된 주의집중'을 통해 창의적 사고에 잠길 수 있다. 완전히 마음을 비운 명상 상태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의 높은 집중 상태의 중간쯤 된다.

어떤 번뜩이는 통찰을 얻게 되는 순간은 오히려 마음이 적당히 풀려 있을 때다. 샤워를 하거나 산책할 때,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누구나 하루 중 어떤 시간은 뇌(사고)가 자유롭게 표류하도록 둘 필요가 있다. 마음을 적당히 풀고 겉보기에 별 상관없어 보이는 생각들을 연결하다 보면 의외의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4 "뭔가 큰 것을 만들고 싶다면 일단 만들기를 시작하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어떤 일이든 시동을 걸기가 어려운 법이다. 경영인이 새 프로젝트에 착수할 때, 작가가 빈 페이지를 볼 때가 그렇다. 중요한 것은 우선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선이 되겠다는 욕망은 출발의 장애물이 된다. 어느 도예 선생이 자신의 학생을 두 집단으로 나눴다. 한 집단에 대해서는 최종 작품의 질에 맞춰 점수를 매길 것이라고 했다.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최종 작품의 양을 기준으로 평가를 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수업시간마다 도자기를 집어던지듯이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학기말 평가에서 최고의 작품은 모두 양에 치중한 학생들에게서 나왔다. 양은 물론 질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만들어본 학생들의 작품이 더 좋았던 것이다."

5 직업을 택할 때 '겉보기엔 좋지만 실상은 좋지 않은 것'의 덫을 피해야 한다고 했는데 자신의 경험담인가

"사람에겐 달러도 중요하지만 하트(heart)도 중요하다.(하트는 인간성과 행복, 정서적 웰빙을 나타낸다고 책에 설명돼 있다.) 나와 형은 인생에서 전환점이 있었고 하트를 택했다. 형은 카네기멜런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후 보잉에 입사해 747 점보제트기 만드는 일을 했다. 하지만 열정을 느끼지 못했다. 나도 처음엔 버클리대 MBA를 나와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5년간 보수도 실적도 아주 좋았다. 하지만 가슴이 뛰지는 않았다. 금전적으로는 자극적이었지만 감성적으로 보상이 없었다. 형은 아이디오를 창업했고 나는 나중에 합류했다. 지금 일은 항상 우리를 몰입시키고 변화시킨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세상에 더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돈과 행복의 상관성은 어떤 한계점을 넘어서면 격감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구직자에게 돈만 이야기한다면 다른 데로 가고 말 것이다.

예일대에서 조직행동론을 가르치는 에이미 브르제스니에브스키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직장(job), 경력(career), 소명(calling) 중 하나로 본다. 직장으로 보는 이에게 일은 돈 버는 수단일 뿐이다. 경력으로 보는 사람은 더 좋은 직위, 더 큰 사무실, 더 많은 월급을 얻는 데 집중한다. 그들은 실적을 중시하지만 더 깊은 의미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소명으로 보는 사람은 일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보상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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