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네!”

내가 왜 이책을 이제 알았을까? 좀 만 더 일찍 알았다면 진화론 책들을 읽으면서 몇 가지 골머리 앓았던 것들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쪽에 관심이 조금 있다보니 여러가지 정보가 머리 속에 쌓이는 것 같은데, 전문분야가 아니라 정리가 안되다보니 진화론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몇 가지 의문점들만 남긴채 책을 덮을 때가 많았다. 찝찝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이 책은 진화론이라는 미궁 속에 빠진 나를 구원해 준 아리아드네의 실이었다. 테세우스처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미궁 속에는 헤매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상이한 진화론적 관점들을 구분하고 그것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한다’는 목표 아래 다양한 진화론적 관점들을 명쾌하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인간성에 관한 진화론적 가설들을 스스로 평가하고 무엇이 센스이고 무엇이 넌센스인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습득하기 바란다.” – 45p

 

진화와 진보는 다르다

진화생물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는 케빈 랠런드(Kevin Laland) 교수와 동료인 길리언 브라운(Gillian Brown)이 공저한 <센스 앤 넌센스>는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진화론이 인간과 문화를 설명함에 있어서 기여한 바가 매우 크지만 그 안에 오히려 다윈을 왜곡하고 더 나아가 과학적 엄밀성이 떨어지는 ‘넌센스’가 있다고 설명하며 이 책의 집필 동기를 밝힌다. 저자는 독자들이 진화론 내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있으며 그것을 먼저 구분해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각 관점들의 센스와 넌센스를 구분해 제대로 된 진화론적 안목을 키우기를 원하고 있다.

그 다음 두 저자는 아주 짧게 지난 150년 간의 진화론의 역사를 명쾌하게 풀어준다. 다윈의 진면목에 대해서 설명하며 그 이후 어떻게 다윈주의가 다윈을 왜곡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디지털 시대의 다위니즘(...)
디지털 시대의 다위니즘(…)

뭐 이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진화론에서 말하는 진화는 ‘진보’와는 완전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알만한 사람들이 그것들을 계속해서 왜곡했다는 것이다. 다윈의 비망록에는 다음 같은 문구를 써 놓고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절대로 ‘더 높다’거나 ‘더 낮다’는 말을 쓰지 말것.”

다윈은 어떠한 변종도 다른 개체보다 더 진보했다고 간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연히 다윈주의적 진화는 인종차별이나 사회적 다윈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진화론의 약사를 설명한 후 이 책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 가지에 – 사회생물학, 인간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 대해 논한다. 관점에 대해 논할 때는 네 가지 패턴을 따르고 있다. 각 관점의 주요 개념이 무엇인지 그에 따른 사례연구가 어떤 것이 있는지 그 관점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저자의 종합적 결론을 말한다.

이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각 관점의 ‘넌센스’만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각 관점이 어떤 것이고 다른 관점과 어떻게 다른 지를 알 수 있고 책 제목대로 무엇이 ‘센스’인지를 알 수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이렇게 진화론적 관점이 나눠지를 몰랐고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이 어떠한 관점으로 쓰여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몇가지 사례를 이 다섯가지 관점을 통해 다각적으로 알아보면서 이러한 다양성이 있는 것이 진화론적 관점에서도 얼마나 유용한지를 밝히며 더 나아가 생물학과 사회과학이 화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

 

환원주의, 이야기짓기 오류를 넘어

그렇다면 내가 가졌던 묵은 체증은 무엇이었으며 이 책이 어떻게 해결해 주었는지를 간단하게 언급해 보겠다.

이 책에서도 밝혔듯이 지금 다섯가지의 진화론적 관점 중에 인기 차트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는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은 해밀턴-도킨스로 이어지는 혈연선택이론의(포괄적합도 때론 이기적 유전자로 이해되는) 토대 위에 레다 코스미디스와 존투비의 ‘산타바버라 학파’가 주도적으로 발전시킨 분야이다.

사회생물학과 걸쳐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재천 교수가 유명하며 <오래된 연장통>으로 진화심리학을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전중환 교수가 있다. <오래된 연장통>은 생각보다 많이 팔렸다. 12쇄를 찍고 증보판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진화심리학 대중화에 일등 공신은 아무래도 스티븐 핑커가 아닌가 싶다. 그의 압도적 집필 능력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자연스럽게 진화심리학적 관점의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첫 번째 묵은 체증은 진화심리학의 ‘이야기짓기 오류’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이야기짓기 오류란 나심 탈래브의 <블랙 스완>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일종의 ‘환원주의적 오류’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굳이 이야기를 엮어 단순하게 만드는 행위.

물론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야기짓기 오류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나 또한 벗어나기 힘듦을 알고 있고 나심 또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음을 <블랙 스완>을 통해 드러냈다. 그런데 그게 좀 정도가 있어야 하는 데 가끔 진화심리학 책들을 읽을 때면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매우 자주 들었다.

20120923221310819-horz

하지만 내가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보니 그럴 때마다 책에 메모만 해 놓고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정말 내 속이 펑 뚤릴 정도로 말해주고 있다.

“진화심리학도 ‘그냥 그런 이야기들’ 류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에 취약하다. 심지어 가장 열렬한 진화심리학자일지라도 자신들의 연구 분야에서 빈약한 연구와 근거 없는 서술이 성행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 239p

“다수의 빈약한 연구들이 고작해야 플라이스토세라는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양산함으로써 진화생물학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 연구에는 감정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상당한 주목을 끄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많은 진화심리학 연구들이 이미 알려진 사항들을 정리한 뒤, 그럴듯한 진화론적 설명을 가미하고 간략한 보도자료를 첨부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진화심리학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론보다 더 세련 이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해왔다.” – 262p

물론 환원주의에 대해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과학은 기본적으로 환원주의에 입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세상의 복잡한 현상을 좀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믿는 것이 환원주의인데 그런 정신이 없다면 과학은 아애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적절한 환원주의’이다. 여기서 부적절하다는 것은 과학적 검증이 불충한 상태에서 억지 해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바로 진화심리학이 자주 범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두번째 체증으로 이어지는데 262p를 인용한 부분에서 저자는 ‘다수의 빈약한 연구들이 고작해야 플라이스토세라는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양산’한다고 부분이다. 솔직히 난 진화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사바나 환경’ 운운할 때마다 좀 짜증이 났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이 지난 200만년 동안 플라이스토세의 아프리카 평원에서 이루어진 수렵, 채집 생활에 적합하도록 형성되어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바나’의 생활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며 인간의 심리를 해석한다. 그런데 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사바나뿐만 아니라 사막, 강가, 대양의 연안, 숲속, 극지에서도 살았을 뿐만 아니라 가장 결정적이게도 우리는 지금 우리 조상이 플라이스토세 동안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생활환경을 기초로 설명을 한다?

국회의원 진화과정
국회의원 진화과정

 

진화는 진화심리학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또 하나 이러한 근저에는 ‘인간의 진화는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조엘 킹솔버가 62개 생물종과 관련된 2500건 이상의 자연선택 사례를 종합한 결과 수천 년 이내에 실질적인 생물학적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연구결과가 가장 많이 축적되어 있는 종은 인간이다.

특히 최근 뇌과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데 신경계와 뇌의 진화 속도는 타의 추정을 불허한다. 세로토닌 전달체, 글루탐산염 및 글리신 수용체, 후각 수용체, 시냅스 관련 단백질, 에너지 대사 등에 관여하는 유전자, 뇌의 크기와 언어에 관련된 유전자, ADHD , 자폐증, 조현병, 알코올 중독과 관련된 유전자 등의 최근에 선택을 받은 유전자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뇌에 대해 쥐꼬리만큼도 모르고 있는 상태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최근에 선택받은 유전자들이 발견될지 모른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매우 급속한 자연선택이 인간의 게놈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360p

다시 말해 최근에 생물학은 새로운 사실을 쏟아내고 있는데 진화심리학은 여전히 잘 알수도 없는 ‘사바나에서 수렵 채집을 하며 살아가고 있던 원시인의 뇌’를 근거로 현재 인류의 심리를 재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생각해보면 진화심리학계가 갖고 있는 비전이 똑똑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또 다른 체증이었다.

진화심리학의 원류인 레다 코스미디스는 이런 말을 했다.

“장차 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가 다윈적 접근에 의해 완전히 혁신되고 나면, 진화심리학은 더 이상 ‘진화심리학’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냥 ‘심리학’이라 불릴 것이다.”

최재천 교수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진화심리학이 그저 심리학의 한 작은 분야로 남을 게 아니라 언젠가는 심리학 그 자체가 되리라는 코스미디스의 예측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오랜된 연장통>의 저자 전중한 교수도 이런 말을 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 심리의 모든 측면에 대한 새로운 접근, 즉 진화적 접근이다. 어떠한 심리 현상도 다윈이라는 틀을 통해 분석될 수 있으므로 진화심리학은 심리학의 모든 분야를 통합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준다.”

IMG_4266

이 책의 저자는 정말 통쾌하게 한 마디 던진다.

“지난 30여 년 동안 진화생물학 분양에서는 돌연변이, 재조합, 유전적 부동, 다수준 선택 등의 다양한 과정들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최신 연구 결과들을 참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진화심리학이 진화론적 사고의 시대적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의구심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외견상 진화심리학은 전문적인 기본적인 진화생물학 문헌들보다, 리처드 도킨스류의 대중적 진화론 서적들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진화는 진화심리학 교과서에서 다뤄지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현상이다.” – 253p

한 마디로 진화심리학은 전혀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밈’으로 시작하는 ‘미메틱스’는 이미 한 물 간지 오래되었고 포괄 적합도 이론(혈연선택)도 무소불위의 권좌에서 이제 내려와서 다시 그 자격이 있는지 검토해야할 시점에 왔다. 이미 진화론계의 거장 윌슨도 <지구의 정복자>를 통해 자신이 유명하게 만들었던 ‘혈연선택’을 버리고 ‘다수준 선택’으로 개종했음을 선언했다.

우리는 아직도 남녀 생식 성공률은 짝짓기 상대의 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여성은 남성보다 자녀양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라는 진화심리학적 설명을 너무 쉽게 그리고 때로는 권위있게 접하고 있다. 이러한 설명으로 인해 남성은 복수의 젊고 다산적인 배우자를 찾도록 여성은 배우자 선택에 신중을 기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진화이론은 실제 성 선택 과정이 훨씬 더 복잡한데다가 보편적 패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진화론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

물론 진화심리학은 문화, 의사결정, 정서, 언어, 임신, 정신질환, 성적 행동과 성차, 낙인찍기, 시각 인식 등 많은 분야의 이해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진화심리학은 저자에 의하면 자신들의 비전과는 너무나 동 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애정어른 조언도 한다.

“세간의 뜨거운 반응과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진화론적 사고는 심리학 연구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이 방법론을 확장하여 다른 진화론적 관점, 도구, 탐구방법까지 포용했다면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 263p

초파리 유전학자이자 강의도 정말 재밌게 하시는 김우재 박사의 이책에 대한 서평은 정말 압권이다.

“이기적 유전자와 통섭으로 대변되는 진화생물학 교양도서 시장은 편향되어 있고 무엇보다 학계의 논의와도 괴리되어 있다. 이 책은 진화생물학이 인간의 수준에서 논의될 때 반드시 숙지해야 할 학문적 역사와 함의를 담고 있다. ‘통섭’을 읽고 설레발치는 과학주의자들과, 진화심리학이 인간정신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리라 희망하는 얼치기 과학자들, 마지막으로 과학을 거부하는 것이 인문학 정신이라 생각하는 독단적 회의주의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물론 난 최재천 교수를 좋아하고 <오래된 연장통>도 정말 재밌게 읽었으며 최근 스티븐 핑커의 책에 지적 희열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애정이 있는 만큼 큰 불편함이 있었다. 이 책에서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판을 설명했지만 난 오히려 이 책 <센스 앤 넌센스>를 통해 진화심리학에 더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진화론’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무조건’ 읽어보길 권한다. 솔직히 책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진화론을 바라보는 좀 더 바람직한 패러다임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앞으로 난 이 책을 내 가까운 곳에 둘 것이다.

진화론이라는 미궁 속에 빠질 때마다 아리아드네의 실이 꼭 필요할테니 말이다.

원문: 그녀생각’s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