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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랠런드, 길리언 브라운 - 센스 앤 넌센스

파프리카에페리카나가 | 2014/11/07 16:18 | 독서 노트앱으로 보기



센스 앤 넌센스

저자
케빈 랠런드길리언 브라운 지음
출판사
동아시아 | 2014-09-23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아이디어를 낸 학자로 ...
가격비교글쓴이 평점  




케빈 랠런드


진화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런던대 박사학위 후 UC버클리와 케임브리지에서 연구. 현재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에서 행동과학과 진화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다.




길리언 브라운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 심리학과 교수. 케임브리지에서 동물학 공부, 동물행동학 박사학위.




목차


제1장 센스와 넌센스

제2장 150년 진화논쟁 약사

제3장 사회생물학 논쟁

제4장 인간행동생태학

제5장 진화심리학

제6장 문화진화론

제7장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제8장 진화론에 접근하는 다섯 가지 방법




제1장 센스와 넌센스


우리가 많은 저자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들을 나열해보면 대충 이렇다. "우리의 정신은 본래 원시시대의 수렵, 채집인처럼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발버둥 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털 없는 원숭이'처럼 행동하게 된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 중에서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이 책은 이러한 의문제 답을 제시하기 위해 씌어졌다.


1975년 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생물학>이라는 책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동물의 행동에 관한 백과사전적 서적이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동물행동에 관한 교과서가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언론매체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드물지만, 윌슨의 책은 달랐다. 그 책의 마지막 장에서 윌슨은 "동물의 행동에 관한 최근의 연구, 특히 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와 빌 해밀턴의 통찰력의 인간행동의 다양한 측면들을 설명해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광범위한 주제들, 이를테면 인간의 성적 차이, 공격성, 종교, 동성애, 외국인 혐오 등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사회과학은 생물학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충격적 예측까지 내놓았다.


윌슨의 책은 격론을 불러일으키면서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뒤흔든 이른바 '사회생물학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사회과학자들은 윌슨의 주장을 통렬하게 비난했고, 윌슨의 방법론은 흠집 내는 데 골몰하는가 하면, 그의 설명을 사변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깔아뭉갰다. 흥미롭게도, 비판자들 중에서 가장 저명한 축에 드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르원틴과 스티븐 J. 굴드는 윌슨과 하버즈 대학교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유명 언론은 통해 "윌슨은 단세포동물이자 환원주의자"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윌슨의 주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동물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서 사회생물학의 가치가 입증되자, 많은 학자들이 이 '새로운 도구'를 이용하여 인간성 해명을 시도했다. 그 결과 논쟁은 양극화되었고, 급기야 매우 정치적인 색깔을 띠게 되었다. 비판자들은 사회생물학자들을 '우익의 보수적 가치를 옹호한다'고 비난했고, 사회생물학자들은 비판자들을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연루되어 있다'고 몰아세웠던 것이다..


감정이 격앙되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난무하는 논쟁의 와중에서 균형 잡힌 판단과 공정성으로 눈길을 끈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중 한 명인 존 메이너드 스미스였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열띤 논쟁의 와중에도 점잖게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논쟁이 과학적 관점을 일탈하여 정치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또한 윌슨을 겨냥한 온당치 못한 비판을 꾸짖는가 하면, 생물학적 원리의 부적절한 적용이 지니는 위험을 꾸준히 경고했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인간행동에 관한 윌슨의 견해 중에서 일부는 설익고 심지어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그는 균형감 있는 분석을 통해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인정하는 한편, 책의 여러 가지 긍정적인 특징들을 조심스럽게 강조하기도 했다.


이 논쟁에서 찬반론자들이 얼마나 양극화되고 이성을 잃었던지, 후에 메이너드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인정할 정도였다. "트원틴이나 굴드와 한두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사회생물학을 열렬히 지지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윌슨이나 트리버스와 한두 시간 동안 대화하면 나도 모르게 사회생물학을 신랄히 비판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기본적으로 메이너드 스미스와 같은 입장을 취하고자 한다. 즉, 진화론적 방법론의 긍정적인 면을 개관하면서도,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부분을 지적하는 데 망설이지 않고 생물학적 원리를 무책임하게 적용하는 위험을 경계함으로써, 시종일관 균형 잡힌 중도적 견해를 유지하고자 한다.


사회생물학 논쟁의 높은 열기와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혹독한 비판에 부담을 느낀 사회생물학자들은, 빗장을 닫아걸고 외부와 접촉을 끊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1989년 에번스턴에서 개최된 인간행동 및 진화협회(HBES)의 창립총회 기조연설에서, 회장 빌 해밀턴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은 적들에게 겹겹이 에워싸여 있다"고 말했다. (......) 오늘날에도 HBES 내부에는 자기비판에 대한 거부감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한다.


진화론적 관점의 진정한 이점 중 하나는 창의성이다. 우리는 진화론에 담긴 창의성이 억눌리는 것을 원치 않으며, 브레인스토밍의 가치와 이를 위한 시간 투자의 필요성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떠한 과학 분야도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가설과 연구 방법론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원칙을 신봉한다. 이제 인간의 행동과 진화에 관한 연구가 웬만큼 자리를 잡은 만큼, 외부의 비판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수단은 '한 차원 높은 과학 기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1970년대에 개념적 발전을 이루면서 등장한 다섯 가지 접근방법을 다루고자 한다. 이들 다섯 가지 접근방법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한 것으로, 인간사회생물학, 인간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다.


인간의 행동과 진화를 연구하는 분야는 혼란스러운 용어들로 가득한데, 이는 외부인은 물론 해당 분야 종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의 가장 유명한 '사회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을 일컬어 동물행동학자라고 했으며, '사회생물학'이라는 명칭을 싫어한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한편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생물학> 밀레니엄 판에서 "최근에는 인간사회생물학을 진화심리학이라고도 부른다"고 주장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인간과 동물의 행동이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종간 비교의 유용성). 하나의 좋은 예가 많은 원숭이들에게서 관찰되는 '수컷끼리 올라타는 행동'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종종 '동성애적 행동'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수컷끼리 올라타기와 동성애는 - 행위의 피상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 각각 다른 원인에서 유래하는 별개의 행동패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나중에 진화한 것은 인간의 '은폐된 배란'이 아니라 다른 동물에서 나타나는 '드러난 배란'이다. 대부분의 유인원을 비롯한 대다수 영장류가 배란 시기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침팬지는 인간과의 공통조상에서 갈라져나간 뒤 배란을 드러내는 쪽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특정한 형질이 자연선택의 결과인가?'하는 의문은 진화론적 분석을 괴롭히는 고질적인 문제 중의 하나다.


일부 연구자들은 "인간의 행동과 사회에는 전통적인 사화과학자들이 믿는 것보다 더 많은 획일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모든 사회에 걸쳐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은밀한 공통성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를테면 모든 문화가 지위와 역할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업의 원리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발달이 매우 유연한데다 유전자는 매우 느슨한 방법으로 학습에 영향을 미치다보니, 발달 및 학습 과정에서 진화의 방향성에서 이탈한 듯한 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진화론과 유전자 결정론은 별개다. 대다수의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 발달의 전 과정에 걸쳐서 다양한 환경요인들이 나름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발달생물학자들조차도 "행동의 발달 과정에는 다양한 상호작용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의 행동을 본성과 양육 이 두 가지 요소로 분해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간행동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풍부한 사회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복잡한 문화전통에 젖어 있는 동물'로서의 인간을 연구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질 것 같다.


다윈은 인간에 관해 많은 분량의 글을 썼는데, 인간과 다른 동물 간의 지적 능력의 차이가 기존에 생각했던 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를 많이 수집했다. 또한 동물들도 놀랄 만큼 지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야수와 같은 성향이 감추어져 있음을 증명했다.


다윈의 친척이자 총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인 프랜시스 골턴은 유전이 인간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를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행동과 지적 능력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강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선입견은 그의 우생학 관련 저서의 바탕이 되는 한편, 세월이 흐른 뒤 인종차별과 강제 불임수술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진화에 대한 다윈주의적 견해가 사회적 다윈주의로 왜곡되었던 사례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적자생존 원칙을 사회제도에 적용하는가 하면, 잘못된 진화론적 주장을 내세워 무절제한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고 ‘사회주의 유해론’을 주장했다. 또한 진화론적 사고를 가진 19세기 인류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진화와 진보를 혼동한 나머지, 자연선택의 개념을 인간 사회의 진화에 적용하여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진화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2장 150년 진화논쟁 약사


우리는 일부 인종이 다른 인종들보다 더 진보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또는 우생학, 나치즘, 규제 없는 자본주의, 인종주의적 이민정책, 강제 불임수술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로 진화론적 주장이 이용된 사례를 제시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대다수는 다윈의 이름을 종종 부당하게 거론하면서 그의 이론을 조잡하게 왜곡하지만, 사실은 장 라마르크나 허버트 스펜서 같은 19세기 지식인들의 저서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다.


'인구가 증가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토머스 맬서스의 견해에 감명 받은 다윈은 "한 집단에서 환경에 가장 적합한 해부학적, 생리학적, 행동학적 특징을 가진 개체가 가장 높은 생존 및 번식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나아가 그는 "환경에 적합한 특징들이 자손에게 상속된다면, 후세에는 그러한 특징을 가진 개체들이 증가할 것이고, 결국 그 집단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의 원리, 즉 '개체 사이에서 탄생한 변이가 환경적응을 통해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실험에 의해 설명력이 입증됨에 따라, 오늘날 자연선택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진화'라는 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고작해야 맨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부였다. "나는 먼 미래에 훨씬 더 중요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이 활짝 열린 것을 본다. 심리학은 새로운 기초 위에 서서, 정신력과 지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차곡차곡 습득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기원과 역사에도 한 줄기 빛이 드리워질 것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 말미에서 은근슬쩍 내뱉은 화두를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데는 1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호기심에 휩싸인 대중은 다윈의 입만 바라보며 주야장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는 동안 '인간이 진화해왔다'는 관념은 대중 사이에서 애증의 원천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다윈은 세상의 박해와 조롱을 두려워한 나머지,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때까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려 들지 않았다.


다윈을 대신하여 결연히 싸움터에 뛰어든 것은 그의 훌륭한 지지자였던 토머스 헉슬리였다. 헉슬리는 1860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벌어진 유명한 논쟁에서 윌버포스 주교를 완파한다. 헉슬리는 강연과 함께 <자연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증거>(1863)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유인원의 머리뼈를 이용하여 '인간의 조상은 동물'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했다. 고고학자들은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누락된 연결고리를 설명해줄 화석을 찾기 시작했다.


1870년이 되자 다윈의 불도그로 불렸던 토머스 헉슬리는 과학이 지배하는 신세계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자가 되어 있었다. '과학자'가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받고 '과학'이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순전히 헉슬리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870년대에 이르자 다윈은 유명해졌고, 사람들 모두가 '위대한 다윈 선생'이 인간의 진화에 대한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기다렸다. 다윈은 특유의 조심성을 발휘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결국 <인간의 유래>(1871)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을 내놓았다. 다윈은 헉슬리의 영역이었던 인간의 해부에 머무르지 않고, '지적 능력의 진화'라는 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종의 내부는 물론 종 사이에도 지능의 변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선천적으로 높은 지능을 부여받은 쪽이 생존과 번식을 위한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윈은 "인간과 다른 동물 간의 지적 능력 차이가 널리 알려진 만큼 크지는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동물이란 내장된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에 지나지 않으며, 추론과 고도의 인지 처리가 가능한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반박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다윈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던 앨프리드 월리스는 "인간의 보갑한 언어, 음악, 미술, 도덕 등은 자연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신성한 조물주가 인간의 진화 과정에 개입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윈은 "인간은 좀 더 야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동물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 첫 부분에서 특정 감정을 표현하는 인간과 동물의 표정이 놀랄 만큼 유사함을 지적하면서, "표정이란 인간에게만 주어진 독특한 것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상태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다"는 세간의 주장을 일축했다.


다윈은 유인원과 원숭이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뱀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도 뱀을 보면 상당수의 인간들처럼 기겁한 표정으로 비명을 지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 짓궂게도 가짜 뱀을 만들어 런던 동물원의 원숭이 우리에 넣어 보고는, "그 가련한 동물들은 우리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날카로운 비명을 지름으로써 다른 원숭이들에게 위험신호를 보냈다"고 적었다. 다윈은 또 침팬지가 동멩이를 이용하여 견과류를 깨뜨린다는 것을 현대의 연구자들보다 약 1세기나 먼저 주목했다.


다윈은 개미들도 인간과 똑같은 감정에 이끌려 흥분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심지어 개에게서도 용감함과 소심함을 찾아볼 수 있고, 말도 토라질 수 있으며, 원숭이는 앙심을 품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이상과 같은 주장들은 순진하고 일화적이며 의인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의 지적 능력에 관한 다윈의 기본적 주장들은 대부분 옳은 것으로 입증되었다. 대부분의 동물행동 연구자들은 많은 동물들이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고, 학습과 지적 행동을 할 수 있으며, 인간과 여러 가지 감정상태를 공유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자연선택이 유기체 이외의 다른 실체에도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언어의 진화를 입증하는 논거를 펼치면서, 그는 리처드 도킨스가 제기한 밈 개념을 예견이라도 한 듯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생존경쟁은 모든 언어의 어휘와 문법에서도 부단히 계속되고 있다. 어휘와 문법에서는 더 훌륭하고 짧고 쉬운 형식이 끊임없이 우위를 차지하는데, 이러한 성공은 그들이 보유한 고유의 장점 때문이다."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존 로크, 데이비드 흄,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영국의 철학자들은 "처음 태어난 인간의 정신은 내장된 지식이 없는 텅 빈 상자와 같으며 세상을 경험하면서 차츰 채워진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를 연합주의associationism라고 하는데, "인간은 다양한 관념과 관찰을 통합시킴으로써 주변의 사물들을 차츰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연합주의가 어째서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지식 습득을 가능케 하는 구조가 미리 구축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의 정신이 세계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유명한 <순서 이성 비판>에서 "인간의 정신 속에는 세계를 인식하는 데 기여하는 어떤 전제조건이 존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선고 지적했는데, 칸트의 통찰력은 신경학, 심리학, 인공지능 분야에서 최근에 이룩된 방대한 연구성과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주변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며 모방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 기구mental appratus가 어느 정도 유전자의 산물임을 이해하고 있다. 다윈이 펴낸 세 권의 위대한 책은 심리학 분야에서 연합주의적 견해가 쇠퇴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 제2부에서 암수 간의 신체적, 정신적 차이를 부연설명하기 위해 성 선택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자연선택의 원리에 이어 등장한 이 개념에 의하면, "암컷과 수컷은 각각 이성과의 교미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동성 간의 경쟁력(암컷 간의 경쟁보다 수컷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간주된다)을 강화하거나 이성에게 배우자로 선택될 가능성(배우자 선택권은 암컷에게 있다고 간주된다)을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 제각기 몇 가지 특징을 진화시켰다"고 한다. 성 선택에 관한 다윈의 이론에는 처음부터 인간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 이론은 남녀의 차이뿐 아니라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며 관찰했던 인간 집단 간의 신체적, 행동적 변이까지도 설명하는 이론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양성 사이에 존재하는 정신적 차이에 대한 다윈의 견해는 약간 고리타분해 보인다. "남성은 여성보다 더 용감하고 호전적, 정력적이며, 발명에 관한 재능이 더 많다. (......) 남자는 경쟁을 즐긴다. 경쟁은 야심으로 이어지며, 야심은 자칫 이기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 (......) 여성은 기질적으로 상냥하고 이기심이 적다는 면에서 남성과 다른 것 같다. 여성의 경우 직감, 빠른 인식, 모방 등의 능력이 남성보다 훨씬 뛰어나다."


"여성도 교육을 받으면 남성과 똑같은 지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의 말로 미루어볼 때, 다윈의 견해는 당대의 많은 사람들보다 자유분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 선택 과정에서 암컷의 선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은 '여성이 배우자 선택과 성 행동에서 흔히 허용된 것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윈은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면 인종별 차이는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 다윈은 '민족 간의 다양한 차이는 기후와 문화로 인해 초래되는 것이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적 발달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다윈의 사촌동생 프랜시스 골턴은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이전에 다윈의 사상을 함께 논의했던 최측근 지식인 그룹의 일원이었다.


골턴은 수학, 심리학, 진화론에 크게 기여한 만물박사였으며, 일란성 쌍둥이를 이용하여 유전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업적 중 하나는 범죄수사를 돕는 지문채취법을 발명한 것이다. (......) 골턴은 측정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예컨대 영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은밀하게 각 도시의 미인 지도를 만들고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가장 많은 도시는 런던, 가장 적은 도시는 애버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과학연구 모임에 활기츨 불어넣기 위해 청중이 따분해 하는 정도를 정량화하려고 시도했다. 골턴은 기어코 청중들이 꼼지락거리는 횟수를 분 단위로 측정하기에 이르렀고, 이 연구결과를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골턴은 지독한 편견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예컨대 '선천적으로 범죄형인 사람이 있으며, 아무리 환경을 개선하더라도 이것을 바꿀 수 없다'든지, '다양한 와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여성의 지적 능력이 열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등의 낭설을 믿었다. 그리고 모든 개인차를 유전의 탓으로 돌렸으며, 교육이나 기회의 역할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유전에 관한 골턴의 편견은 천재성을 '천부적으로 타고난 매우 뛰어난 능력'이라고 규정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교육이 지적 잠재력을 활짝 꽃피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교육을 통해 타고난 지능을 뛰어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골턴은 여성의 교육이나 참정권을 반대했다. 인종에 대해서도 편견을 드러냈다. 예컨대 아프리카인들의 평균 지능이 유럽인들보다 낫다고 보았다. 심지어 영국 내에서도 스코틀랜드 남부 및 잉글랜드 북부 거주자들이 잉글랜드 중부, 특히 런던 거주자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골턴은 세월이 흐르면서 문명화된 인종이 미개한 원주민은 몰아내는 것은 불가피한데, 이유는 후자의 지적 능력이 부족해 우수한 문명사회의 임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골턴이 <유전하는 천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내 루이즈가 건강 때문에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쯤이었다. 아마 이것은 골턴이 나중에 인류의 지적 수준의 미래를 점점 더 우려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층계급이 상류층보다 왕성하게 번식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우생학 사상을 집대성한 저서 <인간의 능력과 발달에 대한 탐구>(1883)가 출판되었을 때 비난의 표적이 되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생학 원리가 아니라 주로 반종교적 견해였다. 골턴은 가족사에 관한 정보를 이용하여,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처럼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타직업(예컨대 법률가)의 고위층보다 오래 살지 못하고, 선교선도 화물선과 거의 같은 빈도로 침몰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놀랍게도 "기도는 아무런 효험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골턴은 그 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심리학자 중 한 명이 되었고, 20세기 초에는 골턴의 이론에 바탕을 둔 우생학 운동이 영국, 미국, 독일을 비롯한 30여 개 나라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리로 1914년이 되자, 미국의 30개 주에서는 우생학을 근거로 하여 정신박약자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19세기 말 무렵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진화적 변화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인기를 잃고 있었다. 켈빈 경과 같은 물리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진행되려면 수십억 년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러기에는 지구의 나이가 너무 젊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이 계산한 지구 나이의 추정치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1870년 당시에는 그것 말고도 자연선택에 반대되는 증거가 산적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1809년 파리 자연사박물관의 교수로 재직하던 위대한 진화론자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는 진화에 관한 저서를 출판하면서 "모든 종은 한꺼번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탄생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라마르크는 각각의 종의 최종 목표는 인간이라고 했다. 이러한 이동 과정은 부모가 일생동안 획득한 형질들, 예컨대 축적된 지식이나 잘 발달된 근육 등을 자식에게 물려줌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진화에 대한 라마르크의 견해는 직선적이며,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라마르크의 이론은 처음 프랑스에서 퇴짜를 맞았는데, 이는 주로 조르주 퀴비에의 반대 때문이었다. 퀴비에는 당시 프랑스에서 영향력 있는 생물학자였다. 한편 영국에서는 라마르크의 이론은 '위험할 정도로 무신론적이고, 프랑스 혁명사상과 너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간주했다. 사실, 다윈이 점진적인 견해를 강조한 것도 아마 어느 정도는 진화론을 혁명으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라마르크는 학문적 논란이 한창일 때 가난하게 죽었는데, 장례식 때 딸이 "아버지, 세월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줄 거에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딸이 옳았다. 19세기의 물리학자들이 "자연선택이 이루어질 만큼 충분한 시스간이 없었다"며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는 가운데,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는 라마르크의 견해만큼 빠른 진화를 설명하는 데 안성맞춤인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이론은 널리 신뢰를 받지 못했지만, 진보와 진화를 동일시하는 라마르크의 견해는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 있다.


라마르크 사상의 옹호자 중 한 명이었던 허버트 스펜서는 19세기 말에서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큰 영향력을 발휘한 학자였다. 스펜서는 '종과 인간 사회를 비롯한 모든 것이 단순한 상태에서 좀 더 복잡한 상태로 변화해가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사상을 널리 전파했다.


스펜서는 1882년 미국을 방문하여 환대를 받았고 그의 저서는 수천 권씩 팔렸다. 왜냐하면 그의 견해는 새로 부국이 된 미국의 기업가 정신을 정당화했기 때문이었다. 적자생존이라는 스펜서의 구호는 큰 호응을 얻었다.


진화론 사상이 사히와 기업으로부터 지지를 받자 이른바 '사회적 다윈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운동은 다윈보다는 스펜서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사회적 스펜서주의'라는 이름이 더 적절해 보인다. 1894년에 발간된 스펜서의 저서 <인간의 진보>의 제목을 보면, 다윈이 인간의 진화에 대한 저서들을 출판한 지 불과 20년 만에 진화론 사상이 진화와 진보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 부상했음을 알 수 있다.


다윈은 진화를 '사다리'보다는 '가지를 뻗은 나무'로 묘사했다. 그러나 사회적 다윈주의자들은 생물학적 진화를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는 과정'으로 오해하여, 경쟁이 장려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사회적 보수주의, 군국주의, 우생학, 자유방임 경제, 규제 없는 자본주의 등과 같은 원칙들을 정당화했다.


미국 학계를 대표하는 사회적 다윈주의자는 예일 대학교의 정치경제학 교수였던 윌리엄 섬너였다. 섬너는 "백만장자도 자연선택의 결과다. 그들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높은 보수를 받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이러한 합의는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주의 제도는 '부적격자들의 생존을 증진한다'는 이유로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앤드루 카네기와 J. D. 록펠러 같은 기업가들은 진화의 개념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이용했다. 예컨대 카네기는 "소수의 수중에 기업을 집중시키는 것은 인류의 미래 발전을 위해 필요불가결하다"고까지 주장했다. 이것은 다윈 사상의 중대한 왜곡으로, 다윈은 자신의 생각이 이처럼 해석되는 것을 전적으로 거부했다.


사회적 다윈주의가 번성한 이유는 19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본성이 양육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상이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지배했던 탓도 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인종의 순수성이 필요하다'는 유사과학적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혼합유전이라는 엉터리 개념과 스펜서의 적자생존 원칙을 들이대는가 하면, 인간과 동물을 아전인수 격으로 비교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나의 투쟁>에 실린 히틀러의 주장은 넌센스였지만, 생물학적 진화를 진보로 왜곡시키는 견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는 없다.


다윈이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한 조지 로매니스조차 진화를 진보로 간주했다. 로매니스가 1874년 다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후부터, 두 사람 간의 관계는 강한 우정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로매니스는 다윈보다 스펜서와 헤켈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은 듯, 두 사람의 저서들을 빈번하게 인용했다. 로매니스는 헤켈의 생물발생법칙을 이용하여 동물들의 지적 능력을 오름차순으로 배열하고, 맨 위에 인간을 배치했다. 그런 다음 각 나이마다 그에 상응하는 동물의 지능을 예시했다. 이를테면 생후 3주의 갓난아기는 지적 능력 면에서 곤충과 비슷하고, 4개월이 되면 파충류와 비슷하며, 한 살이 되면 코끼리만큼 영리하고, 생후 15개월이 되면 유인원과 개보다 더 똑똑하다는 식이었다.


프로이트의 성 심리이론은 신빙성을 잃은 헤켈의 생물발생법칙으로부터 직접 도출된 것이었다.


심리학계 내부에서는 "관찰 및 측정 가능한 행동패턴만을 연구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반사작용과 자극반응 학습처럼 예측 및 제어 가능한 행동이 관심의 초점이 되어으며, 학습이 중요한 연구주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사조를 행동주의라고 하는데, 1913년 출판된 존 왓슨의 저서가 시발점이 되었다. 왓슨은 유전이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유의미한 요인이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나는 교육 전문가다. 내게 건강하고 토실토실한 아기를 열두 명만 보내, 내 방식대로 양육하게 하라. 장담하건대, 그들 중에서 임의로 한 명을 골라 의사, 법률가, 화가 등의 전문가, 심지어는 거지나 도둑으로도 기를 수 있음을 증명하겠다. 아기들의 재능, 선호, 경향, 능력, 소질, 인종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은 기회균등을 강조하는 정치이념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생리학자 이반 헤트로비치 파블로프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레닌은 파블로프가 볼셰비키의 인간행동 통제작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타진하기 위해, 1919년 은밀하게 그의 연구소를 방문했다고 한다. 1930년대에 이르러 본능이라는 개념은 실험심리학에서 거의 모습을 감추었고, 진화라는 개념도 덩달아 사라지고 말았다.


본능의 부활; 동물행동학


로렌츠가 1966년에 발표한 <공격론>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많은 지식인과 사회과학자들을 크게 당황시켰다. 로렌트는 싸움과 전쟁을 '인간의 본능적인 공격성이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공격성은 우리 몸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오르다가, 달리 표출되지 않을 경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쑥 분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에 가서 낙관론으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로렌츠가 내놓은 인류의 청사진은 암울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은 지능의 산물인 원자탄을 손에 들고, 유인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공격적 충동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 이 충동은 지성으로도 통제할 수 없다. 다른 행성에서 날아온 편견 없는 관찰자가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인류의 만수무강을 예언하기는 힘들 것이다."


1967년 동물학자이자 런던 동물원의 포유류 큐레이터였던 데즈먼드 모리스는 <털 없는 원숭이>를 출판함으로써 로렌츠의 <공격론>보다 더욱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1,000만권 이상 판매되고 모든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털 없는 원숭이>의 기본 전제는 '인간은 사냥꾼으로 전향한 전형적 유인원으로 간주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리느는 "남편이 친구들과 밖에서 어울리지 못하게 막는 것은 잘못"이라고 언급했고, "남성적인 특징을 가진 여성은 아들을 동성애자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상당수의 동료 동물행동학자들이 모리스의 글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는 모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의 본성은 과거 유인원이나 수렵, 채집인으로 살아가던 시절의 생존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가정한 뒤, 오늘날의 사회행동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진화사의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대중적 동물행동학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털 없는 원숭이> 등은 독자에게 '옳은 것', '자연적인 것', '불가피한 것'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진화론을 억지로 갖다댄 책들 중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연선택은 최종목표는 '더 높은 상태'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다윈 자신도 '진화'를 '진보'로 잘못 표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깨닫고, 개인 노트에 "절대로 '더 높자'거나 '더 낮다'는 말을 쓰지 말 것"이라는 문구를 적어 놓고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오늘날 진화생물학자들은 진화를 진보라고 주장할 만한 객관적 근거가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다윈주의적 진화는 인종차별이나 사회적 다윈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다윈의 저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은 세심함과 근면함이다. 그는 연구결과를 뒷받침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증거를 수집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윈은 자연선택의 아이디어가 처음 떠오른 지 20년 만에 <종의 기원>을 출판했고, 그러고 나서도 무려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인간의 진화를 언급했다. 다윈의 책과 논문에는 증거와 사례가 흘러넘치는데, 이것은 모두 가설을 지지하고 반론을 제압하기 위해 꼼꼼히 선별된 것이었다.


다윈이 모든 점에서 항상 옳을 수는 없었지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그의 사상은 세월의 시련을 이겨냈다.




제3장 사회생물학 논쟁


1973년 로렌츠, 틴베르헌, 폰 프리슈가 동물행동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을 때, 동물행동학은 진화생물학 내부에서 새로 등장한 분야에 가려 이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영국과 유럽에서는 동물행동학으로부터 사회생물학으로의 이행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미국에서는 애당초 동물행동학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못했던 탓인지, 에드워드 윌슨의 등장 이후 사회생물학이 급부상했다. 1976년 봄에는 미국의 주요 대학에 사회생물학 강좌가 개설되었으며, 1970년대 말까지 사회생물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학 잡지들이 잇달아 창간되었다. 열성적인 연구자들의 눈앞에는 갑자기 새로운 방법론과 의문점들이 펼쳐지고, 낙관적 희망이 샘처럼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다윈을 비롯한 위대한 사상가들을 괴롭혔던 수수께끼들이 고해상도의 분석도구 앞에 정체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생물학의 개척자는 조지 윌리엄스, 로버트 트리버스, 윌리엄 해밀턴, 존 메이너드 스미스 등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이 사회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 권의 책 때문이었다.


윌슨의 중요한 공로는 '사회생물학'이라는 분야를 창시하고 문패를 내걺으로써, 뿔뿔이 흩어져 있던 연구자들에게 사회생물학이라는 분야가 존재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실행 가능성과 중요성을 일깨워줬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뒤에는 옥스퍼드의 동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20세기최고의 인기 과학도서 <이기적 유전자>를 펴냈다. 이 두 권의 책들은 유전자 관점gene's-eye view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쓰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 관점'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어떤 특징이 진화할 것인지를 이해하는 가장 편리하고 유용한 방법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고 '다음 세대에서 출현 빈도가 증가할 형질은 무엇인지'를 질문해보는 것이다." <사회생물학>과 <이기적 유전자>는 사회생물학의 아이디어 및 방법론에 내포된 참신성과 흥미 요소를 성공적으로 포착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을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결고 지나치지 않다. 전 세계의 생물학자들은 이들 두 저서를 거론하기 위해 강의 내용을 수정했고, 일반인들도 이 책들을 통해 진화생물학의 복잡한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윌슨은 사회생물학을 '모든 사회행동의 생물학적 근거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이 정의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정의라기보다는 그의 비전을 제시한 '선언'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회생물학이 동물행동학과 구분되는 이유는 유전자 관점, 혈연선택, 상호이타성을 비롯한 일련의 핵심 개념들을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회생물학의 등장과 더불어, '선택의 수준'이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진전이 이루어졌다. 사회생물학이 하나의 분야로 대두되기 이전에는 선택이 이루어지는 수준(개체, 집단, 또는 종 전체)은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집단선택의 옹호자들은 동물에게서 관찰되는 다양한 사회적 행동들에 대해, '집단의 이익을 위한 희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선택을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조지 윌리엄스의 고전적 저서 <적응과 자연선택>(1966)을 통해 제시되었다. 윌리엄스는 분석의 수준을 (개체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유전자 수준으로 낮춰, 하나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더욱 많이 발현되기 위해 갖춰야 할 특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훨씬 더 간단하고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유전자는 오직 하나의 기준, 즉 '미래 세대에 그 유전자의 발현을 최대화할 수 있는 개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에 의해서만 선택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같은 유전자 관점을 나중에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훨씬 더 강력하게 표현되었다.


집단선택에 반기를 든 진화생물학자들을 괴롭히는 주된 난점은 이타성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개체가 자신의 생존 및 번식 기회를 줄이고 다른 개체의 번식을 성공시키려고 행동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처럼 명백한 자기희생적 행동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예컨대 개미, 꿀벌, 말벌 등 벌목 곤충 군락지의 경우,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개미 또는 일벌은 암컷이다. 그러나 이들은 평생 동안 번식을 하지 못하며, 번식 가능한 하나 이상의 암컷, 즉 여왕의 새끼들을 기르는 데 헌신한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이들 일개미나 일벌의 존재에 대해 "특히 곤란했던 문제로, 처음에는 대처하기가 불가능했고 실제로 내 이론 전체에 치명타를 가했다"라고 적었다. 이 수수께끼는 그 후 100여 년 동안 진화생물학자들을 헷갈리게 하다가, 1964년에 이르러 영국의 대학원생 빌 해밀턴이 해답을 내놓으면서 일단락되었다. "가까운 친척은 같은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므로, 그들의 번식을 도움으로써 공유된 (이타적)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출현하는 빈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해밀턴의 획기적인 연구에 이어, 하버드 대학교의 로버트 트리버스도 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지닌 논문들을 내놓았다. 트리버스는 정신분열증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에 지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초 수년 동안 혼자 힘으로 많은 사회생물학 이론을 수립하며 활발하게 행동했다.


해밀턴과 마찬가지로 트리버스 역시 대학원생 시절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다. 트리버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윌슨과 똑같은 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윌슨에 의하면 그는 놀라운 지능을 가진 조울증 환자로, 주기적으로 연구실로 달려와 때로는 거칠로 때로는 멋진 생각들을 뿜어냈다고 한다. 윌슨은 트리버스와의 대화를 "정신상태를 바꾸는 위험한 약물을 복용하는 것과 같았다"고 묘사했으며, 트리버스와 2~3시간을 보내고 나면 하루 종일 녹초가 되었노라고 고백했다.


자녀들은 독립을 앞두고 부모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식량과 후원을 얻어내는 행동을 선호하는 한편, 부모는 '현재의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과 '나중에 태어날 자녀를 위해 에너지와자원의 일부를 비축해두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행동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1973년 트리버스는 댄 윌러드와 함께, "부모는 손자의 출생을 최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딸과 아들에게 상이한 양의 자원을 투자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사실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대상으로 트리버스와 윌러드의 가설을 검증하기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리버스와 윌러드의 생각은 '인간의 부모가 왜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우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새 관점을 제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트리버스는 197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상호이타성의 요체가 되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서로 남남인 개체들이 오랫동안 상호작용을 계속하게 되면 양자 사이에서 '특별한 행위'들이 일어날 수 있다. (......) 나중에 두 개체 모두에게 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행위들이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어려움도 있다. 서로 속이거나 상대방의 호의에 보답하지 않으려는 경향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상호이타적 행위는 개체들이 정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이전의 상호작용에 대한 기억을 유지할 경우 더욱 자주 일어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상대방을 속이는 개체는 미래에 이타적 이익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더욱 교묘한 형태의 속임수(예컨대, 자신이 받은 것 이하로만 보답함)는 상대방에게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필승전략(ESS)


인간사회생물학을 가장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과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은 윌슨의 연구실 바로 아래층에 위치한 르원틴의 연구실에서 회동했다.


사회생물학 연구그룹은 1975년 11월 13일 <뉴욕 북 리뷰>에 보낸 서한을 통해, "환원주의와 생물학적 결정론에 치우쳐 있으며 무지와 쇼비니즘의 소치"라고 비난했고, 사회생물학의 기본 가정('사회는 생물학적 필요성을 반영한다')을 트집 잡았다.


윌슨은 비판자들을 '백지설이라는 신화의 영속화를 획책하는 정치적 극단주의자'라고 몰아세우며, "그들의 생각은 완전한 사회에 대한 그들의 순진한 꿈과 일맥상통한다"고 혹평했다. 이와 동시에 인간행동에 대한 연구를 확대한 윌슨은 1978년 <인간 본성에 관하여>를 발표했고,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된데다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다. 윌슨은 "남녀의 행동 차이는 과거의 진화사를 반영하며,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아먄 비로소 근절될 수 있다"는 등 과감한 주장을 계속함으로써 끊임없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1970년대 초 르원틴이 하버드에 부임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장본인이 윌슨이었으니, 누가 봐도 르원틴은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사람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중에 윌슨은 르원틴이 훌륭한 반대자임을 인정하면서, 르원틴이 없었다면 논란이 그처럼 격렬해지거나 그토록 많은 관심을 끌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집단유전학자 중 한 사람으로, 언젠가 스티븐 굴드에게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과학자 중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만큼, 르원틴의 자질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르원틴은 강경한 정치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늘 개방적이었고 매우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꽤 젊은 나이에 미국 국립과학원 회원으로 선출되었지만, 과학원이 군사 연구를 후원하는 데 반발하여 사임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윌슨은 굵직굵직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즐기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고 통합함으로써 국면을 주도해나가는 타입의 과학자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르원틴은 신중했고, 광범위한 언급과 근거 없는 추측을 경계하며, 생물학적 주장의 남용 가능성에 매우 민감했다. "잘못된 과학이론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으므로, 과학은 가능한 한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르원틴의 신념이었다. 사실 진화론의 오용 사례를 감안할 때, 르원틴의 신념은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대부분의 비판자들이 인간사회생물학의 '묵과할 수 없는 문제'로 지목한 것은, 언어나 문화와 관련된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찰스 럼즈든과 발표한 <유전자, 정신, 문화>는 인간사회생물학을 비롯한 윌슨의 전작들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생물학>이 인간의 본성을 구두로 설명하는 데 그침으로써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데 반해, <유전자, 정신, 문화>는 인간사히생물학을 확고한 이론적, 계량적 토대 위에 올려놓았다. 두 사람은 수학적 분석을 통해 중요한 결론들을 많이 도출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① 백지설을 인간의 정신에 적용하는 것은 부가능하다. ② 문화는 유전자의 진화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③ 유전적 성향이 문화를 특정한 방향으로 진화시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1,000년이다.


윌슨은 <유전자, 정신, 문화>가 많은 이들에게 무시받았다는 사실이 의아스럽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공동저자인 윌슨이 사회과학계에서 버림받은 몸인데다가 사회생물학 논쟁이 한창일 때 출판되었던 만큼, 이 책은 인정을 받기는커녕 객관적 평가를 받는 것조차 어려웠다. 게다가 고도의 전문적 내용과 럼즈든의 수학적 방법론이 독자들의 흥미를 반감시켰던 점을 감안하면, <유전자, 정신, 문화>는 애초부터 흥행 가능성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여론은 적대적인 서평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건대 이는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윌슨은 이 책에서 비판자들의 의견에 긍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에게 사회생물학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 되어 있었고, 그들 중 대부분이 윌슨을 강하게 의심했다. 그 결과 생물학과 인문학을 새롭게 통합하겠다던 윌슨의 비전은 성취되지 못했다. 생물학게에서 쌓은 신뢰성에도 불구하고, 윌슨의 인간사회생물학은 사회과학자들에게 완전히 거부당하고 말았다. 윌슨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회생물학의 가장 큰 수혜자는 사회과학자들"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아이디어와 개념은 사회적 행동 연구에 혁명을 일으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집단선택론은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고 다양한 동물종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들 개념은 행동생태학에 계승되었고, 행동생태학은 덕분에 매우 생산적이고 엄밀한 탐구 분야로 발전했다.


윌슨은 "나의 목적은 인간의 행동패턴이 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고 누누이 밝혔다. 모든 동물의 행동은 유전자-환경 간 상호작용의 산물이며, 개체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달리 말해서, 유전자가 인간의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산발적이기 때문에, 유전자 결정론에 관한 논쟁은 종종 '유전자의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나의 유전자가 특정한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다음 세대에 유전된다고 해서, 그러한 행동패턴이 하나 이상의 유전자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거나 고정적이거나 불가피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전자 이외의 요인들도 행동발달에 영향을 미치지만, 이런 영향은 대체로 유전될 수 없기 때문에 진화론적 분석에서는 무시해도 좋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윌슨은 "인간의 유전자는 단일 형질을 지정한다기보다, 일련의 형질들을 발현시킬 수 있는 포괄적 능력을 부여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개인의 구체적 행동 패턴은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비롯하여 그가 평생 동안 마주치게 될 수많은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르원틴과는 대조적으로, 윌슨은 환원주의가 행동을 연구하는 데 적절한 접근방법이라고 믿었다. 윌슨은 자신의 사고방식이 환원주의며,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당당히 밝혔다.


부적절한 환원주의란 현상을 엉뚱한 수준에서 다루는 것을 말하는데, 대표적 예로 원자 수준에 바탕을 둔 사회행동 이론을 들 수 있다.


르원틴에게는 환원주의가 창발성을 등한시하는 거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르원틴은 "사회 및 사회단체에는 개인의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요인이 있으며, 때로는 이들 요인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어느 의미에서는 윌슨도 <유전자, 정신, 문화>에서 문화 자체를 하나의 역동적인 과정으로 취급함으로써 이것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는 문화의 고삐를 쥐고 있다"는 유명한 말에서 보듯, 윌슨은 인간의 생물학적 유산이 문화를 제약한다고 간주한 것이 분명하다. 대다수의 사회과학자들은 아직도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문화 때문에 일어나며, 유전자는 역할이 미미하므로 인간을 연구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 윌슨이 이러한 가정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해서, 그를 환원주의나 결정론으로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다. 윌슨이 사회과학자들을 향해 던졌던 다음과 같은 질문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문화의 강력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는 적응적, 생물학적 영향이 존재하지 않을까?"


윌슨이 <사회생물학>에서 몇 가지 분별없는 언급을 했으며, 그 때문에 상당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예컨대 성차에 대한 견해는 때때로 현상유지를 조장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인종들 간에 나타날 수 있는 적성차에 대한 견해도 쉬운 공격 대상이었다.


"인간의 사회조직은 자연선택의 역사를 반영한다"는 사회생물학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옹호자와 비판자 모두 '현재의 사회 상태가 어떤 면에서는 최적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윌슨은 "유전적 유산이 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평등사회를 만들려면 반드시 모종의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인간사회생물학자들 모두가 윌슨의 견해에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미시간 대학교의 생물학자 리처드 알렉산더는 <다윈주의와 인간 문제>(1979)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역사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이 결정론적 미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생물학적 원리를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적응 극대화라는 역사의 굴레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언명했다.


도킨스는 "유전자를 통해 유전되는 형질이 변경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반대화는 것은 "일단 진화된 경향을 불가피하며 근절할 수 없다"거나, "인간은 생물학적 본성에 사로잡혀 그것(진화된 경향)을 바꾸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이다."


모든 문제는 '진화론적 추론에 풍부한 상상력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진화론이 과학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온 이유도 어느 정도는 가설 설정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설을 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모든 가설은 검증 가능해야 하며, 실제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은 사회생물학이 환원주의적, 결정론적이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사회과학의 영역을 침범해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인간사회생물학자들의 태도가 너무 딜레탕트적(학문 따위를 직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 삼아 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진화론에 열광한 나머지, 잠깐 멈춰 서서 문제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발전시키거나, 사회과학 문헌을 읽거나, 대안이 될 만한 (진화론 이외의) 설명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문제에서 저 문제로 즉흥적으로 옮겨 다니면서 피상적인 이야기만 지어내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사회과학자들의 집중공격은 초기의 인간사회생물학자들로 하여금 똘똘 뭉쳐 상호비판을 삼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회생물학자들이 자신들의 가정에 문제가 없는지 자문하고, 비진화론적 설명의 장점을 고려하며, 사회과학자들이 수집한 자료와 통찰력을 활용하는 등 좀 더 성의 있는 자세를 보였다면, 인간행동에 진화론을 적용하는 것과 관련된 부정적 반응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사회생물학자들이 만들어낸 훌륭한 개념을 중 상당수가 사회생물학의 실패 때문에 무시된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아. 윌슨은 자서전에서, "나를 비판하는 자들의 사회적, 문화적 모델은 명백한 오류를 지적받지만 않으면 참으로 추정되는 반면, 사회생물학의 가설은 완벽한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으면 거짓으로 추정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사회과학자들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윌슨의 불평에 일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편향성을 정당화하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는 사물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 인간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적었으며, 윌슨은 "사회생물학에는 끊임없이 경계해야만 피할 수 있는 치명적인 덫이 하나 있다. 그 덫은 바로 윤리학의 자연주의 오류로서, '존재는 당위'라고 무비판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중요한 측면에서 사회생물학과 다르고, 각 분야의 지지자들은 이러한 차이를 중요한 발전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들 네 가지 분야는 모두 사회생물학 시대에 뿌리를 내렸고, 사회생물학에 얼마간의 빚을 지고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인간사회생물학이라는 용어를 꺼리지만, 이들의 연구결과는 윌슨의 저서들을 둘러싼 논쟁 덕분에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간사회생물학의 명맥은 오늘날에도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4장 인간행동생태학


인간행동생태학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전제조건을 '인간의 행동전략은 광범위한 생태적, 사회적 조건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행동생태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이 특정한 사회적, 생태적 자원에 대응하여 수시로변화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과거의 선택들이 누적되어, 특정한 환경에서 '이익과 비용의 차이를 최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략의 일반적 형태는 "X라는 배경에서는 a를 선택하고, Y라는 배경에서는 b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금전, 토지, 가축 등과 같은 이질적 재화들이 복잡하게 얽힌 결정을 최적화하는 능력을 진화시키지 못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현대사회에서 출산율이 낮아진 것은 가까운 친척 간의 교류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통사회에서 친척의 존재는 어머니의 자녀 양육 능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퍼트리샤 드레이퍼(1989)는 "인간은 가족계획을 세울 때, 금전적 자원 보유량보다 친척의 존재를 더 중요시한다. 부모는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인식할 경우, 실제 능력보다 적은 수의 자녀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후반 인간행동생태학은 새로 창시되고 있던 진화심리학의 창시자들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았다. 가장 적대적인 발언을 쏟아낸 인물은 도널드 시먼스(1987)였다. 시먼스는 "인간행동생태학자들은 인간의 적응에 관한 가설을 설정하거나 검증하지 않았고, 적응에 관여하는 인간의 정신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들은 단지 인간의 행동형질과 생식 성공률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외견상 그럴 듯한 적응적 행동패턴을 확립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적응'과 '적응적'은 일견 유사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적응이란 '어떠한 형질이 특정한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자연선택의 관문을 통과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적응적이란 '어떠한 형질이 현재 생식 성공률을 증가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형질 변이와 생식 성공률 간의 상관관계를 도출하는 행동생태학자들의 방법은 '적응'을 연구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시먼스의 생각이다. "현재 '적응적'인 것처럼 보이는 형질이라도 '적응'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인간행동생태학자들의 방법론은 애매모호하고 비효과적이어서, 확정적인 결론을 기대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1966년에 출간된 조지 윌리엄스의 고전적 저서 <적응과 자연선택>을 읽어보면 논점이 명확해진다. 윌리엄스는 이 책에서, '적응'과 '우연히 효과를 본 형질'을 구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후에 굴드와 브르바(1982)는 '우연히 효과를 본 형질'을 굴절적응이라고 명명했는데, 굴절적응이란 '현재 적합성을 강화하고 있으나 자연선택의 관문을 통과하지는 못한 형질'을 말한다.


시먼스에 의하면, 인간의 '적응' 중 상당수는 우리 조상이 살았던 과거의 세계에 대한 '적응'이며, 현재에 '적응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컨대 식사에 함유된 당분이나 지방에 대한 인간의 미각은 고칼로리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없었던 과거 수렵, 채집인 시절의 '적응'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쾌감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진화론을 이용하여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최선의 방법은 기능론적 접근방법이 아니라 적응론적 접근방법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인간들 사이에서 '적응적' 행동을 찾아내려고 노력하지만, 이렇게 찾아낸 행동이 인간의 '적응'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후자는 '적응'을 구성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데, 이 메커니즘은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다.


행동생태학자들의 특징은 모델 구축 및 검증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나 동물로부터 실증 자료를 수집하여 모델과 비교한 다음, 양자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불일치가 해소될 때까지 모델을 수정한다. 모델 검증이 완료될 경우, 연구자들은 이 모델을 통해 연구대상 동물의 행동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적응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적응'과 '과거의 적응'에 집중한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어쩌면 대부분의) 적응이 '과거의 적응'에 속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환경 차이는 행동과 환경의 불일치를 초래하여 적응 시차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진화를 완전히 설명하려면, '적응적'이거나 '부적응적'인 행동을 관찰하여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적응의 작용과 연관시키고, 그 적응이 과거의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적 상태'를 유지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거의 진화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 일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적응적 행동'이 곧 '적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서, 개인의 생식 성공률을 측정하는 일을 '쓸모없는 짓'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형질 변이와 생식 성공률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함으로써 특정 행동을 적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충분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형질 변이와 생식 성공률 간의 상관관계 분석'은 진화생물학자들의 기본적인 분석도구다. 이 분석도구 덕분에 연구자는 특정 종의 진화 여부와 방법, 그리고 진화 과정의 특징을 탐구할 수 있다.


인간행동생태학은 '특정 환경에서 생식 성공률을 최적화하는 선택이 인간의 행동전략을 형성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런 다음 인간 집단으로부터 실제 자료를 수집하여 모델에서 도출된 예측치와 비교한다. 자료가 모델과 부합하지 않을 경우에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최적화된 행동전략에 관한 가정이 틀렸거나, 특정 전략에 수반되는 비용 및 이익 추정치가 부정확하거나, 아니면 모델 자체가 다양항 상충관계들을 적절히 통합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둘째, 인간이 실은 최적행동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부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행동생태학자들은 두 번째 결론을 이끌어내기를 종종 꺼리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행동생태학자들은 실패를 쉽게 인정하지 않고, 모델의 적합성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명민한 연구자가 나타나, "지금껏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차선책으로 치부되었던 인간행동이, 알고 보니 최적의 전략이었다"고 선언할 경우, 인간행동생태학계에서는 박수갈채와 함께 큰 영예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메이너드 스미스가 지적한 것처럼, 생물학에서 최적화 이론의 역할은 '유기체가 적응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적 행동에 대한 가정을 도구로 사용하여 행동전략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연구자들이 특정 행동의 차선적 성격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모델, 자료 수집, 새로운 모델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동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인간의 행동은 때때로 차선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는 몇 가지 이론적인 근거가 있다. 첫째, 진화심리학자들은 현대의 상황이 과거의 선택 환경과 엄청나게 달라, 우리의 적응을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행동생태학자들은 "인간의 적응 시차는 비교적 작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연구가 서구화된 집단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최적성은 좀 더 자연적인 조건에 노출된 집단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며, 대규모의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인간이 적응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유전자-문화 공진화론(또는 이중유전이론) 연구자들이 수행한 형식 분석에 의하면, 유전자와 문화가 상호작용할 경우 차선적 행동이 선호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셋째, 진화생물학자들이 수행한 이론적, 경험적 분석을 살펴보면, 다수의 극대점이 존재하는 경우 국지적 최적해들이 전반적 최적화를 가로막는 사례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유연성은 무한하지 않으며, 인간이 모든 상황에 최적화되는 것을 방해하는 유전학적, 발생학적 제약이나 성향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행동의 한 가지 측면만은 최적화한다'든지, '인간의 복잡한 행동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단편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은 얼마나 타당할까? 이에 대한 인간행동생태학자들의 견해는 단호하다. 과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환원주의와 마찬가지로, 단편적 접근방법은 복잡한 과학현상을 다루는 데 필요한 실용적 도구 중 하나라는 것이다. 대상을 단순화시켜 생각해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유용하고 분석 가능한 모델을 구축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도적 단순화는 시스템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과정에 연구자들의 주의를 집중시킴과 동시에, 주제와 무관하면서 혼란을 야기하는 요인들을 제거해주기 때문에 단점이라기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회과학의 상당부분을 감염시키고 있는 현재의 후기 모더니즘적 병폐는 마치 유행처럼 반과학적 부정론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적대감의 일부는 다윈주의가 남용되었던 과거에 대한 과민반응에서 유래한다.




제5장 진화심리학


인간사회생물학이 각계각층의 비난에 휩싸여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하자,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성을 탐구하던 연구자들은 일치단결하여 대응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아군의 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상황은 차츰 반전되기 시작했다. 진화론 진영에서도 최선의 연구방법에 대해 이견을 품은 하위집단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하위집단들 중 하나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적, 행동적 특징을 뒷받침하는 진화된 심리적 메커니즘evolved psychological mechanism(EPM)을 규명하는 데 전념했으며, 주로 대학의 심리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진화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였던 레다 코스미디스와 존 투비는 에드워드 윌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빌 해밀턴, 로버트 트리버스, 조지 윌리엄스의 저술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산타바버라 학파.


"그들은 진화론은 '내재된 심리적 메커니즘' 발견을 위한 지침으로 사용하는 대신, '외부로 표출된 행동'에 직접 적용하려고 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현대의 인간 집단들이 경험하는 환경이 과거에 조상들이 경험했던 환경과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구자들은 현대인의 행동이 환경에 적응되어 있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현대인이 머릿속에 석기시대의 정신을 가지고 돌아다닌다'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추론이 옳다면, 인간의 사고방식을 연구함으로써 과거 조상들의 선택환경이 어땠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EEA(진화적 적응환경)라 하면 석기시대의 수렵, 채집인 조상들이 생활했던 플라이스토세 환경을 말한다.


인공지능 연구에 의해, 인간의 정신은 아무리 간단한 인지과제를 처리하는 경우라도 미리 규정된 절차나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밝혀졌고, 지적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려면 복잡한 문제를 간단한 기능적 과제로 분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신 속에 내재된 심리적 메커니즘이 의사결정을 안내하며, 이는 기능적 서브루틴으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의견을 내놓게 되었다. 심리학자들은 전산화된 정보처리 이론들을 점점 더 많이 개발했는데, 그 목표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려면 인간의 정신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를 기술하는 것이었다.


이 장에서는 산타바버라 학파의 창립자인 코스미디스와 투비가 정의한 '협의의 진화심리학'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기로 한다. 산타바버라 학파는 그동안 진화심리학 분야의 지배적인 학파였고 지금도 그러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기는 하지만, 광의의 개념을 사용하면 초점이 너무 흐려져 특징을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코스미디스와 투비에 의하면, "자연선택은 '행동 그 자체'를 선택할 수 없으며, '행동을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라고한다.


투비와 코스미디스에 의하면, 진화심리학의 핵심과제는 '인간의 정신이 당면한 적응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인지 프로그램의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며, 이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들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2. 플라이스토세의 조건 하에서 인간의 적응 문제가 어떤 형태로 나타났고, 선택압력은 무엇이었는지를 추론한다.

"체내수정, 9개월간의 임신, 수유 등의 부담에 직면한 여성들이, 그에 필요한 자원을 보유함과 동시에 기꺼이 제공하려는 배우자를 선택"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광범위한 비교문화 연구를 통해 '인간의 배우자 선택이 전 세계에 걸쳐 일관성 있는 패턴을 나타내는지'를 분석해보았다. 그중에는 37개의 상이한 문화권에서 모집한 1만 명 이상의 지원자들을 조사한 경우도 있었다. "모든 대륙, 모든 정치체제(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포함), 모든 종족집단, 모든 종교집단, (일부다처제에서부터 일부일처제에 이르는) 모든 가족제도에 걸쳐, 여성은 남성보다 재정적 전망에 대해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은 젊고 신체적 매력이 있고 죽을 때까지 정절을 지킬 아내를 원한다. 이러한 선호체계를 서구문화, 자본주의, 앵글로색슨족의 편견, 대중매체, 광고업자들의 부단한 세뇌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인간의 경우 성공한 남성은 여러 명의 아내와 자녀를 거느림으로써 큰 승리를 거둘 수 있고 패배자는 극도로 비참해지는 반면, 여성들의 생식 성공률에는 큰 차이가 없어 웬만한 여성들은 중간 수준의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경쟁의 결과에 따라 보상의 크기가 많이 엇갈리는 남성들은 전 생활사에 걸쳐 고위험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은 여성보다 궁핍하지 않지만, 위험을 회피하기보다는 기꺼이 부담하려는 성향이 높아 보인다.


런던 위생, 열대의학대학원의 밸 커티스가 이끄는 연구팀(2004)은 전 세계인이 방문하는 웹사이트를 통해 모집한 약 4만 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다섯 가지 가설을 검증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결과, 98% 이상의 참가자들이 '질병과 관련된 그림의 혐오도 ≥ 질병과 무관한 그림의 혐오도'라고 응답했는데, 이는 모든 문화적 배경을 가진 참가자들 사이에서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네 가지 가설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혐오감은 감염증에 걸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진화된 것"이라는 진화생물학자들의 주장은 타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사회생물학과 마찬가지로, 진화심리학도 '그냥 그런 이야기들' 류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에 취약하다. 심지어 가장 열렬한 진화심리학자일지라도 자신들의 연구 분야에서 빈약한 연구와 근거 없는 서술이 성행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코스미디스와 투비는 "우리 인간은 진화사의 99% 이상을 플라이스토세 환경에서 수렵, 채집인으로 보냈다"고 적었다.


EEA를 플라이스토세의 아프리카의 사바나로 생각하는 잘못된 고정관념은 모든 진화심리학 서적들에 만연되어 있다.


인간의 EEA를 특정 시간과 장소로 간주하는 것이 왜 잘못일까?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조상들이 플라이스토세 동안 생활했던 방식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영역 특이성 개념을 논리적 극단까지 밀고 나가면, 환경에서 일어날 만한 모든 사건에 개별적으로 반응하는 모듈들을 지닌 중추신경계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경회로 측면에서는 그 부담이 막대할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루어진 인공지능 연구들은 "지능적 행동에는 영역 특이성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지만, 새천년의 교훈은 다르다. 무인 로봇 자동차와 같은 지능형 행위자는 여러 영역에 걸친 통합과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며, 규칙적으로 베이지만 분석, 확률적 모델링, 최적화 등과 같은 종합적 처리도구를 활용하고, 다양한 환경적 징후에도 대응해야 한다. 이처럼 인공지능 분야의 주안점은 영역 특이성에서 영역 일반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외견상 진화심리학은 전문적이고 기본적인 진화생물학 문헌들보다, 리처드 도킨스 류의 대중적 진화론 서적들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거처럼 보인다.


개체 수준 이항서 작동하는 선택과정의 대표적 사례는 이기적 DNA와 이기적 유전자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전문가들이 "개체 수준 이상에서 작동하는 종 선택이나 계통군 선택이 중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집단선택은 인간의 진화에서 점차 중요한 과정으로 대두되고 있다. 계통군 선택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전향한 진화심리학자들 중에서, 종전에 집단선택론을 비판하여 명성을 얻었던 그들의 지도자 조지 윌리엄스도 그 대열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적응을 확인하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진화 과정과 조상의 환경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과거에 어떤 형질이 선택되었는지를 추론함으로써, 특정 형질이 적응인지 아닌지를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러한 추측을 지식에 근거한 추측이라고 하지만, 이 추측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는 "적응론에 심취한 일부 진화생물학자들이 진화 과정을 너무 단순하게 개념화함으로써 종종 잘못된 결론을 도출했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대표적 진화생물학자인 인디애나 대학교의 마이클 린치는 "진화를 순전히 자연선택의 측면에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며, 유전체, 세포, 발생의 측면에서 진화를 이해하려면 가능한 한 적응을 들먹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수의 빈약한 연구들이 고작해야 플라이스토세라는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그냥그런 이야기들'을 양산함으로써 진화생물학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 연구에는 감성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상당한 주목을 끄는 경우가 많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은 인간의 정신을 진화이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사회과학자들은 "문화는 반드시 인간의 유전자나 환경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며, 생물학적 제어로부터 벗어나 제한적인 자율성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회과학자들 말대로, 문화 그 자체가 진화의 중요한 담당자일지도 모른다.




제6장 문화진화론


대니얼 데닛은 <다윈의 위험한 생각>에서 다윈의 자연선택론을 만능 용매에 비유하며, "전통적 개념들을 깡그리 녹여버리고, 그 자리에 혁명적 세계관을 남겨 놓았다"고 말했다. 추상적인 설명적 개념으로서의 자연선택은 외견상 너무 멋진 개념이어서, 생물학적 진화에만 한정시키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마자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면역계나 중추신경계까지도 자연선택과 동일한 과정을 통해 진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사화과학자들은 심지어 과학이론조차 진화적인 변화를 겪는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에서 "특정한 단어가 생존경쟁을 통해 살아남거나 보존되는 것도 자연선택"이라고 과감하게 언급함으로써, 언어도 진화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자연선택은 수많은 과정들의 변화를 설명하는 일반법칙일지도 모른다'는 다윈의 직관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예컨대 면역계는 자연선택과 동등한 선택과정을 통해 항체를 생성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마지막 장에서 문화복제자cultural replicator라는 신개념을 등장시켰다. 도킨스는 문화 전달과 유전자 전달 간의 유사성을 강조하면서 패션, 식단, 관습, 언어, 예술, 기술 등이 역사적 시간을 통해 진화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은 20세기 가장 인기 있는 과학서적 중 하나를 통해 데뷔한 이후, 철학자 대니얼 데닛의 매우 성공적인 저술을 통해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 말에는 미메틱스를 주제로 하는 최초의 학술회의가 개최되어, 미메틱스는 향후 활발한 연구 프로그램의 하나로 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문화계에서는 밈에 심취한 컴퓨터 괴짜들이 추종자들을 끌어 모아 인기 있는 하위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학계에서 밈이 거둔 결실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밈의 종말에도 불구하고, 문화진화론이라는 광범위한 사상은 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등을 망라하는 엄밀한 과학을 탄생시켰다. 문화진화론은 문화변동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이 접근방법을 고안한 연구자들은 밈에 열광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문화가 서로 경쟁하는 변이체들로 이루어진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메틱스 연구자들과는 달리, 이들 연구자는 현재 진화이론에서 받아들인 이론적 모델과 방법을 이용하여 문화변동을 연구했다.


이런 식의 접근방법은 일부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더 진보했거나 우수하다는 결론에 이르지는 않지만, 일부 문화형질이 다른 문화형질보다 성공적으로 전파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문화진화론을 계량적으로 연구하려는 움직임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기 3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모호한 정의는 과학적 분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화진화론자들은 부득불 조작적 정의라는 실용적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내린 조작적 정의에 따르면, 문화란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로서, 학습이나 모방 등의 사회적 전달방식을 통해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습득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에는 지식, 신념, 가치, 태도 등이 포함된다. 문화는 '사회에서 학습된 다양한 정보 묶음의 집합체'.


자연선택이 일어나려면, 변이, 경쟁, 유전이라는 세 가지 기본적 특징이 갖춰져야 한다.


문화진화론의 비판자들은 "어떤 문화정보가 획득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유전자며, 문화형질이란 정보가 개인들 사이에서 전달될 때마다 재구축되기 때문에 복제된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문화진화론자들을 몰아세웠다.


때로는 사악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미메틱스의 관점 중 하나는 '인간이 자신의 신념, 가치관, 생활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비도덕적인 마인드 바이러스가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밈이 우리를 선택하고 조종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유전자는 변화하는 환경을 구체적으로 예측하여 적응하지 못하므로, 유전자가 주도하는 문화학습은 일반적 수준을 벗어날 수 없고, 심지어 환경과 동떨어진 내용을 담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문화형질이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채택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유전적 성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지역문화가 무엇인가?' 또는 '문화 전달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적당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회적 지식(지역문화와 문화 전달자에 관한 지식)은 학습자가 획득하는 정보를 예측하는 데 필수적이다.


스페르버 등은 "한 사람의 뇌 속에 있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뇌로 온전히 전달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문화복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일 인간의 뇌 속에서 정보의 재구축을 담당하는 인지 유도자라는 진화된 구조가 존재한다면 사본이 원본과 매우 유사할 것이므로, 문화복제자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헨리치와 보이드(2002)는 문화복제자가 문화진화에 필요한 전제조건이 아님을 밝혔다.


"인간의 문화에 대한 합리적 이론을 수립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다윈주의의 개념과 방법론을 차용하여 인간 문화의 구조적 특징에 맞도록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행동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 문화진화론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같은 추론은 유전 과정과 문화 과정 사이에 뚜렷한 유사성이 존재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문화적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달리 통합적, 수평적 전달이 관여한다고 한다. "생물학적 진화는 한 번 분지된 것이 나중에 재결합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산해나가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문화적 진화는 다르다."


굴드로부터 "문화정보는 개념적인 계통을 뛰어넘어 도약한다"는 지적을 받자, 밈의 열렬한 지지자인 대니얼 데닛(1995)은 두 가지 측면에서 미메틱스의 문제점을 절감했다. 첫째는 진화의 계통이 엉망으로 뒤섞인다는 것이며, 둘째는 밈의 외적 표현이 너무나 빨리 변화하기 때문에 특정한 밈을 추적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문화진화가 주로 수렴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진화론 연구자들은 이 같은 어려움을 핑계로 현재의 방법론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최상의 분석도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혈통을 가로지르는 차용이 상당한 수준인 경우에도 계통발생학적 추정이 적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론연구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차용에 맞추어 설계된 새로운 계통발생학적 네트워크 방법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천b




제7장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대부분의 인간행동생태학자와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자와 환경(유전자가 발현되는 배경)이 기본적인 인간성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문화진화론자들은 "문화적 과정이 인간행동의 흥미로운 측면을 좀 더 강력하게 설명해준다"고 믿으며,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도 이 같은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양측은 유전자와 문화의 상대적 중요성을 놓고 다투고 있지만,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유전자와 문화가 둘 다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유전자와 문화가 환경 속의 다른 요인들과 더불어 상호작용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유전자와 문화가 모두 진화한다면, 이 둘은 서로 적응하거나 상대방의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양자를 동시에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진화론적 접근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인간사회생물학 논쟁 이후에 등장한 주된 진화론적 접근방법 중 하나로, 유전자-문화 공지화론 또는 이중유전이론dual-heritance theory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문화진화론과 진화심리학의 이종교배로 태어난 잡종식물과 같으며, 그 화분 속에 '수학적 엄밀성'이라는 영양분이 약간 첨가되었다고 보면 된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자들에 의하면, 문화와 유전자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끈은 문화와 유전자에 의해 양방향으로 당겨진다고 한다.


문화변동의 속도는 유전적 진화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매우 빠르며, 향후 점점 더 가속화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석기 제작 기술이 처음 발명된 이후 지난 250만 년 동안 인류의 진화를 지배해온 것은 유전자-문화 공진화라고 할 수 있다.


락타아제 유전자는 인간의 게놈에서 최근에 선택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표지 중 하나로, 이 선택이 처음 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00~10,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자들은 "강한 호혜성을 나타내는 문화집단은 그렇지 않은 문화집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이로 인해 친사회적 행동의 밑받침이 되는 유전자가 선택되고, 결국 친사회성이라는 보편적 형질이 인류 전체에 전파된다"고 주장한다.


여러 집단이 각각 다른 행위를 학습한 경우, 집단 안팎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 즉, 집단 내부에서는 순응(그리고 비순응자에 대한 처벌)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개인 간의 행동 차이가 최소화되고, 집단 외부에서는 집단 간의 차이가 뚜렷하게 유지될 것이다.


보울스는 2009년의 분석헤서, "친사회성은 집단 간의 폭력을 통해 출현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흔히 '가문의 내력'으로 알려진 특징들은 생각보다 유전 가능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 예컨대 음악적 재능의 경우가 그렇다. 음악적 재능의 개인적 차이는 유전자보다는 부단한 연습, 지원을 아끼지 않는 가정환경, 훌륭한 교육 때문이다.


문화진화론에 가해진 비판 중 상당수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화는 별개의 단위로 분리하여 모델화할 수 없다.


유전자는 잘 정리된 염색체 위의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부위에 자리잡은, 분명한 미립자성의 대립유전자 쌍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거둔 놀라운 진보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자들은 유전자가 염색체 위의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에서 끝나는지, 그리고 그 사이의 어느 부분을 유전자로 간주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규정하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가 많다.


유전자 또는 종의 경계에 관한 불확실성이 진하생물학의 발전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문화 진화의 경우에만 애매한 기본단위가 문제시되는 이유는 뭘까?


유전자와 문화를 독립된 과정으로 분리하는 것은 왜곡이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생물학과 문화의 이분법을 조장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매우 급속한 자연선택이 인간의 게놈(뇌의 기능에 관여하는 부분을 포함한다)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플라이스토세 이후 뇌의 기능에 중요한 유전적 변화가 일어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점진주의적 주장은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인간을 '사회적으로 전달되는 역동적 문화를 보유한 종'으로 규정하고, 인간의 진화는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다른 종의 진화와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첫째, 젖당 흡수 유전자의 진화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문화는 매우 효과적으로 자연선택의 압력을 변화시키고 집단의 생물학적 진화를 추동한다. 둘째, 문화는 새로운 진화 과정, 예컨대 문화적 집단선택을 만들어낸다. 셋째, 문화의 전달이 때로는 진화를 가속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지연시키기도 하는 등, 진화의 속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인간행동 연구를 위한 종래의 진화론적 연구방법이 항상 적절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연구는 분야의 성격상 거의 이론 위주로 진행되었으며, 방법론 측면에서는 집단유전학적 접근 방법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제8장 진화론에 접근하는 다섯 가지 방법


서구의 지성사에서 인간의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했던 선학들의 노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잘못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진화론을 신중하게 사용함으로써 인간성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던 사례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접근방법 중에서 가장 난해한 것은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수학적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가장 전망이 밝음에도 불구하고 다중처리, 시그마, 델타 운운 하면서 골머리를 썩이기 때문에, 극소수의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상형문자로 쓰인 듯한 이론이 광범위한 실증학문으로 바뀌는 날까지, 많은 사람들은 참여자라기보다 관찰자의 입장에 머무르게 될 것 같다. 최근 실증적인 유전자-문화 공진화 연구방법이 등장하여 어마간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고, 인간게놈프로젝트 결과로 인해 조성된 활발한 연구 분위기를 감안하면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분야는 향후 몇 년 내에 크게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비록 이론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행동생태학의 대표적인 연구자들은 현재 진화론 분야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올라 있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에 열광하는 연구자들이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주된 교훈은 '활발한 실증적 연구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다윈주의적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력이 진화심리학자들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진화심리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부분적으로, 진화심리학적 관점을 과학적 연구에 적용하기가 매우 수월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진화심리학은 운 좋게도 재능 있는 저술가들을 여럿 확보하고 있었다.


역사를 더듬어보면, '인간만이 특이하게 X를 하거나 Y를 소유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내놓았다가, 나중에 다른 동물에게서 X나 Y가 발견되면서 입장이 난처해진 연구자들이 수두룩하다.


"동물행동학자인 니코 틴베르헌(1963)이 제기한 '어떤 동물은 왜 특정 행동패턴을 나타내는가?'라는 의문은 네 가지 상이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네 가지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특정 행동의 기능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특정 행동이 동물의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가? 

둘째, 특정 행동의 진화사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그 동물의 조상들은 어떤 상태였고, 그 행동이 진화되는 과정에서 후손이 받았던 선택압력은 무엇인가? 

셋째, 개체로 하여금 특정 행동을 하게 한 근접 원인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감각 입력, 신경 메커니즘, 행동 작동 시스템 중 어떤 것이 특정 행동을 유도한 직접적 원인인가? 넷째, 동물의 발달 과정에서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다시 마해 생애의 적절한 단계에 그 행동이 발현되도록 안내해주는 요인은 무엇인가?


최후통첩게임을 통해 우리는 "인간은 기대 이상으로(즉,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할 경우 예상되는 수준 이상으로) 관대한 제안을 하고 불공정한 제안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어떠면 '모든 학설들은 각자 나름대로 유용한 통찰력을 준다'는 말은 공허한 이상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연구자들은 방법론적 보완성과 이념적 일관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만 다른 학설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진화이론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① 설명의 수준, ② 가설 수립 방법, ③ 가설 검증 방법, ④ 문화의 개념 및 중요성이라는 네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인간사회생물학자는 행동의 수준에서 진화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대부분의 인간행동생태학자들도 동의하는 관점이다. 반면에 진화심리학자들의 경우, 주로 심리적 수준에 초점을 맞춘다. 한편 문화진화론자들은 "정말 중요한 심리적 메커니즘은 오직 모방능력(그리고 기타 형태의 사회적 학습)뿐이며, 인간의 행동을 규율하는 것은 문화정보와 집단의 규범"이라고 주장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진화론 학파들을 구분 짓는 것은 '근본적인 견해차'라기보다는 '초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회생물학자들은 "문화는 인간의 여느 표현형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문화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은 "문화적 차이의 밑바탕에는 유전적 다양성이 깔려 있다"는 것으로, 윌슨에 의해 제시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인간의 다양항 행동형질을 대상으로 정량분석을 행하여, 각각의 행동이 현재 얼마나 적응적인지를 측정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광범위한 집단들 간에 나타나는 행동변이 중에서, 몇 퍼센트가 지역 생태계 때문이고 몇 퍼센트가 문화사 때문인지를 측정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내용 편향과 맥락 편향 중에서 인간의 사회적 학습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어느 쪽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과 기타 실증연구(예: 메타분석)를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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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현명한 대응은 찬반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 견해 모두에 일리가 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설사 현실적 필요에 의해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물론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주장을 그저 대충 절충하여 묶는다고 더 좋은 입장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주장이 가진 장점을 모순 없이 엮어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고 이런 통찰력을 발휘하여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입장을 발견하는 일은 극단적 주장을 펴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적 상황에서 이런 통찰력을 발휘하여 보다 통합적인 견해에 도달하려는 노력은 흔히 학문적 엄밀성을 결여한 게으른 절충주의로 오해되기 쉽다. 선명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훨씬 유리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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